2011년 6월 12일 일요일

비루함과 저열함에 관해서.

 근래 우리학교 모 과목에 대해 반대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주에 그 과목은 시험을 쳤고, 우리는 자보를 뗐다, 붙였다 하면서 여기저기에 우리의 뜻을 알렸다.

 모든 강의가 끝나갈때 즈음, 시험을 치고 나온 두 남학생이 갑자기 자보를 거칠게 떼냈다. 우리는 달려갔다. 그들에게 따졌다. 하는 말은 가관이었다. 이 자보는 허락받지 않은 불법 자보기 때문에, 우리는 이걸 땔 권리가 있다고.

 웃기지마라. 떼고 싶으면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가서 떼라고 할 일이지, 그걸 왜 너희들이 하는가. 그럼 당신들은 길거리에서 토하는 아저씨들 있으면 경범죄 위반이라고 당신들이 직접 처벌할건가? 자경단에게 맡길건가? 그렇게 합법 좋아하는 당신들은 평소에 법 하나 안어기고 성실하게 살아가나? 그리고, 불법인걸 떠나서, 우리는 이 학교 학생으로서 우리의 의견을 알릴 권리가 있다.

 난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옆에서 모님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동안에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입을 다물면서, 자괴감이란걸 느꼈다. 무얼 하는건가, 여기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고민을 한 수만번은 한 것 같다. 왜 당당하게, 이것이 옳지 못한 일이며, 굳이 떼고 싶으면 경비노동자에게 가서 떼달라고 할 일이지, 당신들이 할 일은 아니라고 얘기를 왜 하지 못했는가. 한동안 느끼지 않았던 자괴감을 그곳에서 다시 느꼈다.
 
 그 자괴감은 날 떠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서 괴롭혔다. 아무말도 못했던 나, 병신같은 나, 용기없는 나, 겁쟁이인 나, 등등. 머릿속에는 수만가지 자괴감이 떠올라서 내 머릿속을 쥐어박았고 뇌가 마구 아파왔다.

 그렇게 그 사건은 점점 잊혀져갔다.

 그리고 얼마 후인 오늘, 난 간만에 우리학교 자유게시판에 들어갔다. 우리가 올린 웹자보에 달린 리플을 보고 싶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행동에 대한 지지는 없고 원색적인 비난뿐이 없었다. 차라리 웃음만 나왔다. 화가 난게 아니라, 그저 웃을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논리는, 한마디로 저열했다. 너무 저열한 나머지 모두다 초등학교 교실에 데려다 앉혀놓고 너희들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차근차근히 설명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미 그 글은 모두의 관심으로부터 잊혀져 있었고, 난 두려웠다. 그들의 어줍잖은 논리가 내 폐부를 뚫고 들어가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난 다시 내 자신이 비루하다는걸 느꼈다. 또한, 이런 놈들과 같이 학교를 다녀야 된다는, 입학후 항상 자랑스러웠던 내 모교, 아니, 그 모교를 멋도 모르고 자랑스러워 했던 자신이 더 비루했다. 이것은, 뭐랄까. 참, 묘한 감정이었다.

 그렇게 저열함과 비루함은 계속해서 릴레이를 벌이고 있다. 누가 이길지도 모른다. 서로 앞서거나 뒷서거니 하며 서로를 추격한다. 저열함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의 용기없음을 탓하는 비루함이 떠오르고 잊을만 하면 다시 저열함이 느껴진다.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용기가 계속 없다면 이 비루함과 저열함의 릴레이는 계속되고 언젠가는 이 릴레이를 참지 못해서 그만두겠지.

 근데..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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