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약간의 과제가 남아있지만, 그제 시험을 마지막으로 한학기가 끝났다. 과제를 다 제출하고 나니, 비로소 종강 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한학기였다. 그저 공부만 하다가, 어느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투쟁현장 여기저기를 다니고 있는 날 보면서, 뭐가 어떻게 된 것이지? 하고 반문할 수 밖에 없었다.
시작은 학생인권조례부터였다. 거기서 아마 많은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다. 혹은 안도감이랄까. 이것이 그동안의 나의 삶에 무언가 마이너스가 되지 않으리라는. 그런 자신감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 이후에는 뭐 여기저기 다녔다. 물론 타인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경력이긴 하지만, 다니면서 많은걸 느끼고 보았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주로 분노였다. 이 사회에 대한 분노,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 더럽다고 느꼈던 사회는 알고보니 시궁창에서 쓰레기들이랑 친구 먹는 느낌. 뭐 이런것들을 많이 느꼈다. 그나마 재밌게 갔던 곳도 서울대였지만, 그곳에서도 사실 일견의 무력감을 느끼기는 했다. 이곳에서 무얼 한 것일까, 이곳에 이렇게 있는게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일까, 하는 여러가지 고민들. 그런 것들을 돌아오는 길에 많이 곱씹었다.
명동에 갔을때는 처음으로 두려움과 마주쳤다. 살면서, 용역이란 이름의 깡패를 그곳에서 처음 봤다. 우리와 별 반 다를바 없어보였지만, 약간 날라리 같은 차림에 근육좋은 남자들. 영화속의 조폭이 스크린을 찢고 튀어나온 느낌이었달까. 외관은 그랬지만, 그들이 내뱉는 말을 들었을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살기랄까. 그들의 말에는 그런것들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들을 이렇게 움직인건 무엇일까. 더불어서, 날 이렇게 움직인건 무엇일까, 라는.
글쎄, 곰곰히 생각해보면 양심에 찔리기 싫어서 여기저기 다녔던 것 같다. 입대전에도 그런 고민은 많이 했었지. 입좌파라는 얘기가 정말 싫었고, 그런 얘기를 들을때마다 무언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전역후에도 그런 소리를 듣기 싫었고,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조금씩 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막상 조금씩 활동을 하고 나니 내 앞에는 더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였고,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서 지금 가는 길을 가는것이 과연 내 양심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한낱 자위용에 불과한 것인지, 고민을 가지기도 했다.
이런 고민을 안고 방학을 맞이했다. 해야 할 것은 주로 3개로 잡았다. 많은 곳에서 같이 연대하고,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고민을 하는 방학으로. 물론 그 와중에 다양한 활동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걸 제껴 놓고라도 이 세개는 꼭 하고 싶다. 방학을 가장 기다려 왔던 이유중 하나는 학기중에는 가지지 못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여유를 알차게 활용하고 싶었으니까.
개강 전날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라는 글을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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